농악은 지역에 따라 음악요소,
무용요소, 연희요소 및 내용이 약간씩 달라 대개는 웃다리농악,
영동농악, 호남농악, 영남농악으로 대별한다.
그 중에서도 호남농악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으며, 호남농악은
다시 서해안 평야지대의 우도농악과 산간지역의 좌도농악으로
나누어진다.
우리 민족의 소박한 대중 민속음악인 농악은 전통 문화예술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포괄적인 집단 행위예술이며, 가장
원초적인 악기와 가락으로 흥과 신명을 돋우는 우리 나라 고유의
전통 종합예술이라 하겠다.
정읍농악이 발달한 시기를 찾아보면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에
깊이 관여했던 증산교(교주 강증산)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음이
경전에 기록되어 있고, 1920년대에는 보천교(교주 차경석.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서 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지정 우대하여
농악기능인들을 초청 대대적인 공연을 함으로써 농악을
육성 발전시켰다.
이즈음부터 호남우도풍물의 판이 갖춰지게 되었고 그때의 명인들이
정읍을 중심으로 호남 서해안 평야지대(정읍, 고창, 부안, 김제,
익산, 군산, 영광, 함평, 나주, 목포, 광주)에 정읍우도농악을
이끌었던 명인들을 찾아보면
호남 우도농악의 중심지역으로서 그 찬란했던 정읍농악의
명예를 되살리고자 1980년대초부터 정읍의 많은 농악 관계인들이 우도농악에 대한 꾸준한 발굴과 연구, 농악단
창단을 통하여 유지화, 김종수 선생의 지도하에 우도농악의 전수 및 후진 양성, 호남우도농악 전수관 건립 등으로
호남우도 정읍농악이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